13세기 성당의 미술 속에서 이루어진 모든 분야의 발전은 14세기와 그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지만 미술의 구심점이 되지는 못했다. 12세기 중반 고딕 양식이 처음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시점의 유럽은 소박한 농부들의 대륙으로, 학문과 권력의 중심에 수도원과 봉건영주의 성이 있었지만 약 백오십 년의 시간이 흐르며 이 소규모의 도읍들은 교역의 중심지로 규모가 커지면서 교회나 영주의 세력에서 점차 벗어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귀족들은 그들의 성을 벗어나 도시로 이주하여 사치를 누리고 부를 과시하게 되었다. 어떤 시기를 특정 양식으로 규정하는 일반화에는 반드시 오류가 있게 마련이다. 14세기에 유행한 취미는 장려함 보다는 세련됨을 추구했다.
이런 면은 건축에도 드러나는데 ‘초기 영국 양식’이라 불리우는 성당들의 순수한 고딕 양식이 발전하며 ‘장식적 양식’으로 발전되는데 그 명칭 자체가 변화를 의미한다. 풍부한 장식과 복잡한 격자문양이 유행했다.
건축가들의 일은 더 이상 교회를 짓는 것에 국한되지 않았다. 도시가 성장하며 시청, 사무실, 대학, 궁전, 다리, 성문, 광장 등의 수많은 세속의 건물들이 필요했다.
14세기 조각의 가장 특징적인 작품은 재료의 변화이다. 이전, 교회를 위한 석조상이 아닌 귀금속이나 상아로 소품들을 제작하는 일이 많아졌는데, 그 시대 장인들의 뛰어난 솜씨를 여실히 드러낸다. 이런 작품들은 성물이라 할지라도 공공의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저택 예배실에 비치하기 위한 것이었다. 엄숙한 느낌보다는 사랑과 부드러움을 불러일으키는 경향이 많았다.
우아하고 섬세한 세부묘사는 회화에서도 드러나는데 14세기 화가들이 그린 <메리 여왕의 시편> 필사본의 삽화에서 발견된다. 이야기를 묘사하는 방식은 아직 사실적은 아니다. 이탈리아 지오토의 기법이 도입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우아한 설명과 충실한 관찰이 엿보인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지오토의 미술이 회화의 개념에 변화를 일으키고, 그 이념은 알프스 이북의 국가들에 영향력이 번져나갔고, 반면에 북유럽 고딕 미술가들의 이상은 남유럽에 영향력을 끼쳤다. 특히 피렌체와 경쟁구도를 이루었던 시에나는 초기 비잔틴 미술과 단절하지는 않았다. 시에나의 거장 도치오는 고대 비잔틴 형식에 생명감을 부여하려 했고 성공했다. 금빛 배경을 바탕으로 배치된 두 인물은 복잡한 형태에 알맞게 배치되어 있는데 전통의 문양 위에 배치된 인물은 매우 조화롭다. 그리고 지오토의 업적을 잊지도 않았다. 세부 묘사들을 살펴보면 세심한 관찰을 통해 명암과 공간감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이전 시대에는 실물을 옮겨그린 초상화라는 것이 없었다. 전통적인 방식의 인물을 그리고 지위나 업적을 상징하는 표상을 그리고 이름을 적어 넣는 식이었다. 이 시기의 거장 시모네 마르티니는 이탈리아의 위대한 시인 페트라르카의 친구였다. 페트라르카는 그의 연인 라우라를 위해 쓴 시들로 명성을 얻었는데, 시모네 마르티니는 라우라의 초상을 그렸다고 한다. 아쉽게도 그 초상화는 유실되었지만, 시모네 마르티니를 비롯한 14세기 미술가들이 실물가 유사한 초상화를 그리고 발달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뿐 아니라 기념할 인물들의 실물을 닮은 흉상 등의 조각상들도 빈번히 만들어졌다.
보헤미아 지방은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영향이 전파되는 중심지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리처드 2세와 보헤미아의 앤이 결혼을 하며 영국에도 영향이 미쳤다. 또 영국은 부르고뉴와 교역했다. 이런식으로 유럽은 하나의 커다란 단위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미술가들과 사상가들은 각 중심지들을 옮겨 다니며 작업하고 새로운 것을 접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에, 다른 지역의 것이라고 해서 새로운 문화를 배척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14세기 말까지 여러 지역의 자연스러운 교류로 발생한 양식을 고딕 ‘국제 양식‘이라고 명명했다. 프랑스의 거장이 영국 왕을 위해 그린 ‘윌튼 이면화’를 보면 그 양식의 좋은 예라 할 수 있는데, 실제의 역사적 인물을 묘사한 작품이다. 그림 속 주인공은 리처드 2세였다. 그는 무릎을 꿇고 있으며 성모 마리아와 세 명의 성자, 천사, 아기 그리스도가 그려져 있다.작품 속에서 아름답게 흐르는 선과 인물들의 제스처를 표현한 방법들은 작가가 단축법을 어떻게 솜씨 있게 보여주었고, 상상 속 천국을 장식하고 있는 꽃들을 표현함에 있어 얼마나 자연을 통해 얼마나 관찰하고 연구하고 활용했는 지를 발견할 수 있다.
고딕 국제 양식의 미술가들은 관찰력과 섬세하고 아름다운 표현력을 활용하여 생활을 묘사했다. 달력에 계절에 맞게 그려지는 파종 사냥, 추수 등 작업 광경을 그렸다. 같은 시기의 삽화로 실린 세밀화들은 장면을 이야기로 듣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뛰어난 솜씨였는데, 그 세밀함으로 보아 그림을 그릴 때 확대경까지 이용하며 작업했을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작가가 그려넣은 세부 묘사들은 그림을 거의 실생활의 광경처럼 보이게끔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비슷해 보이긴 해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은 아니다. 나무의 장막으로 가려진 배경 너머로 보이는 지붕 꼭대기 같은 것이나 그림 속 인물들의 움직임이 가능할만한 공간이 표현되어 있지 않는 것을 보면 알아챌 수 있다. 미술가는 대신 상세한 디테일을 최대한 묘사함으로써 현실감을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림 속의 나무들은 상징적인 형태이며 사람들의 얼굴도 기존의 공식에서 조금 발전한 형태이지만, 실제 생활에 대한 화려하고도 자세한 묘사에 집중한 것을 보면 미술가들의 관심이 이야기를 명백하고 인상적으로 표현한다는 관점에서 자세하게 표현해야 하다는 것으로 변화한 것이다.
이들은 종교 미술에 자연에 대한 지식을 적용시키려고 노력했고, 미술가의 작업과 공부의 방향도 바뀌게 되었다. 동물과 식물을 관찰하고 스케치했고, 과거 그리스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인체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얻으려고 애쓰기 시작했다. 종교에 제한되었던 미술의 관심 영역이 자연과 인간으로 돌아서며 중세 미술은 사실상 막을 내리고, 르네상스라 불리는 다음 장으로 넘어가게 된다.
개인적으로 참 반갑구나. 르네상스. 인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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