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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미술사

서양 미술사 15 -15세기 후반 이탈리아 (2)

by 즐거운담원 2022. 10. 5.

 

 

피렌체 이북과 이남의 도시들에서 활동하는 화가들 또한 도나텥로와 마사치오의 새로운 방향의 예술을 받아들였다. 화가 만테냐는 파도바의 교회당에 성 야고보의 전설을 담은 벽화들을 그렸다. 애석하게도 이 뛰어난 그림들의 대부분은 세계 제 2차 대전 때 폭격으로 대부분이 손실되었다. 만테냐의 그림은 같은 지역에 있는 지오토의 프레스코와 비견되는데, 지오토가 이야기의 내적 의미를 전달하는데 중점을 두었던 것에 비해 만테냐는 외부적인 형태에도 관심을 가지고 실제로 벌어졌던 광경을 재구성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였다.  성 야고보가 끌려가던 배경이나 호송하는 군대의 복식과 무장 등도 충실히 묘사하여 로마 미술의 정신을 드러냈다. 만테냐는 절충하는 회화들 사이에서 마사치오의 방식을 밀고 나갔다. 그는 인물들의 배치를 능숙한 연극 연출가처럼 해냈고, 이것은 그 순간을 생생하고 감동적으로 재현했다. 성 야고보를 끌고 가는 호송 행렬이 멈춘다. 박해자 중 한명이 회개하며 성인의 발 밑에 무릎을 꿇었고, 성 야고보는 그를 축복하기 위해 몸을 돌리고 있다. 지켜보는 로마군인 중 누구는 무심하게, 누구는 감동의 표현으로 손을 들어 올리며.

 

북 이탈리아에서 만테냐가 이러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동안, 남쪽에서는 또 다른 위대한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프레스코를 그리고 있었다. 그의 그림 콘스탄티누스의 꿈‘을 살펴보면 만테냐의 그림처럼 연극처럼 장면을 표현하여 핵심적인 행동들에 주의를 집중시킨다. 원근법과 단축법을 대담하게 사용하여 공간을 기하학적 방식으로 암시한다. 그러나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작품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놀라운 것은 빛의 처리이다. 중세의 그림 속 인물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그림자가 그의 그림에서 나타난다. 그가 그린 인물들은 빛과 그림자의 사이에서 양감을 지니고 힘차게 입체로 살아난다. 

 

빛은 형태의 입체감뿐 아니라 공간에 있어서 깊이의 환영을 줄 수 있는, 원근법과 대등한 중요한 요소이다. 피에로는 빛과 그림자를 이용하여 그림 속에 기적을 불러온다. 꿈꾸는 황제가 역사를 바꿀 계시를 받고 있는 깊은 밤은 그렇게 그려졌다.

이렇게 몇몇 미술가들이 피렌체의 위대한 미술가들의 업적들을 적용하고 발전시켜나가는 동안, 새로운 미술가들은 이러한 업적들의 문제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원근법의 발견과 자연에 대한 관찰과 탐구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술이란 과학과는 전혀 다른 면을 가지고 있고, 과학이 발전하는 방식으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새로운 세상의 발견은 또 다른 어려움에 봉착하게 마련이다.

 

중세의 화가들은 정확한 소묘의 법칙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장면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화면 전체에 인물을 배치하곤 했다. 12세기의 달력에 그려진 삽화들이나 13세기의 부조 성모의 죽음‘ 등은 이러한 면모를 보여준다. 그러나 실제로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장면을 거울처럼 반영한다는 새로운 관념이 들어서자마자 그림 속에 인물과 소재를 어떻게 배치하는 가에 대한 문제는 더 이상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다. 실제의 인물들은 조화 있게 모여있지도, 중심이 되는 인물이 바탕에서 뚜렷하게 튀어나와 있지도 않았다. 미술가들이 새로 채택한, 실제와 같은 그림을 그리는 새로운 방식은, 화면을 창조적으로 만들어가는 미술가들이 가진 능력을 해칠 수도 있는 것이었다. 특히나 이런 문제는 제단을 위한 그림이나 비슷한 목적의 작업들에 있어서 두드러지게 부각되었는데, 이렇게 멀리서 보아야 하는 작품들은 원거리에서도 내용을 한눈에 알 수 있어야 하고 건축적 요소들과도 어울려야 했다.

 

15세기 후반 피렌체의 안토니오 폴라이우올로는 이 문제, 즉 정확하게 소묘를 해 나가면서도 구성을 조화롭게 하는 방법에 대한 노력의 결과물을 보여준다. 그 시도가 완벽히 성공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작가가 얼마나 진지하게 이 문제를 직면하고 돌파하고자 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림에 그려진 성 세바스티아누스는 나무 기둥에 묶여 매달려 있고 여섯 명의 집행자들이 사형을 준비하고 있다. 이 여섯 명은 삼각형 속에 세명 씩 대칭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런 배치는 너무나 분명하게 구획이 지어져 있고 좌우대칭으로 나뉘어 있어서 지나치게 경직된 느낌을 주지만, 이런 딱딱함을 보완하기 위해 그 안에서 변화를 꾀했다. 그림 속 인물들은 쌍을 이루어 정면을 보는 사람과 등을 보이게 그려 넣었다. 이런 시도는 아직 완성적을 보이는 것은 아니어서 배경에 원근법을 적용해 그린 토스카나의 풍경과 조화를 이루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분명한 문제들이 드러남은 해결책을 발견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졌고, 그로인해 이탈리아의 미술은 절정기에 닿을 수 있게 된다.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는 이러한 조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15세기 후반기의 대표적 작가 중 하나다. 그 유명한 비너스의 탄생‘은 부귀한 메디치 가문의 한 사람이었다. 미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비너스의 탄생 신화를 가장 품위 있게 묘사하려고 참으로 고민했으리라. 바람의 신들이 불어주는 바람으로 비너스가 타고 있는 조개껍질이 해안으로 밀려오고 바다에서 솟아난 장미꽃들을 비너스가 받아 든다. 그녀가 땅으로 내려서는 순간 님프 하나가 자줏빛의 외투를 들고 미의 여신을 맞이한다. 폴라이우올로가 실패했던 것을 해결해냈다고 말할 수 있는 완벽한 조화였다. 보티첼리의 비너스는 폴라이우올로나 마사치오가 그린 인물들처럼 정확한 인체를 표현하지 못했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긴 목이나, 과하게 처진 어깨, 어색한 왼쪽 팔의 연결 등 어색함이 드러난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이러한 결점들이 관람자들의 눈에 결점으로 보이지 않는다. 우아한 윤곽선을 만들기 위해 실제의 모습에 구애받지 않은 표현은 오히려 천상으로부터 내려온 아름다운 여신의 모습을 더 드높여주는 효과를 보여주었다.

 

보티첼리에게 이 그림을 그리도록 주문한 그 부유한 상인은 로렌초 디 피에르 프란체스코 데 메디치였다. 그는 신대륙을 발견했던 아메리고 베스푸치를 고용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세상은 그렇게 넓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중세라고 불리던 시대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다시 읽어보는 서양 미술사는 새로운 세상이다. 예전에 읽은 건 읽은 게 아니었다. 활자만 읽었던 거였다. 과거 내가 뭘 했나 싶은 부끄러움도 있지만, 또다시 여는 새로운 세상은 즐거움을 준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이미 늦었을 수도 있지만 늦게라도 하는 게 백 번 낫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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