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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미술사

서양 미술사 17 – 15세기 북유럽(2) 조각, 인쇄술, 판화

by 즐거운담원 2022. 10. 7.

조각이나 목판화의 영역에서는 로지에의 업적이 큰 영향을 주었다. 뉘른베르크에서 활동했던 바이트 쉬토스는 1477년 폴란드 크라코우에 양각으로 된 제단을 만들었다. 중앙부에는 성모의 죽음을 둘러싼 열 두 사도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데, 성모 마리아는 누운 모습이 아닌 꿇어앉아 기도드리는 모습이고 그 위로는 그녀의 영혼이 그리스도에게 인도되어 천국으로 향하는 모습으로, 꼭대기에 있는 하느님과 그의 아들이 씌워주는 왕관을 받아들이는 장면이다. 제단의 양 옆에는 마리아의 생애의 가장 중요한 순간들이 각각 묘사되어 있다. 수태고지, 예수 탄생, 동방박사의 경배, 예수의 부활, 승천, 성령강림 같은 장면들이 놀라운 진실성과 표현력을 담고 펼쳐져 있다.

 

15세기 중엽 독일에서 목판술이 발명된다. 이 놀라운 발명은 미래의 미술뿐 아니라 인쇄술의 발명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그림을 인쇄하는 것이 책을 인쇄하는 것보다 몇십 년 더 앞섰다. 시작은 기도문이 들어있는 작은 책자들이었다. 나무 판을 모양대로 요철을 새기고 잉크를 발라 종이에 찍는 것으로 파낸 부분은 희게, 남은 부분은 검게 찍혀 나오는 방식이었는데 이런 방식이 점차 발달하며 문자 인쇄도 같은 방법으로 하게 된다. 당시의 잉크는 기름과 그을음을 섞어서 만들었다. 이런 방법은 새겨둔 목판이 닳아 버리는 순간까지 같은 그림을 여러 장 찍어낼 수 있는 이 단순한 기법은 매우 빠르고 경제적인 방식이었으므로 엄청난 속도로 전파되었다. 목판을 여러 장 함께 사용하여 그림들도 인쇄하여 한 권의 책으로 묶기도 했는데, 이렇게 전체를 목판으로 찍어낸 책들을 목판 책,이라고 불렸고, 일반 시장에서 판매되었다. 이런 목판술은 책뿐만 아니라 트럼프와 같은 카드에도 사용되었다. 재미있고 유머러스한 그림, 예배시간에 교화와 교육을 위해 쓰는 그림 등 두루두루 널리 사용되었다.

1470년경 인쇄된 잘 죽는 방법‘이라는 책은 교회에서 신자들에게 말 그대로 잘 죽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 제작한 것이었는데, 삽화를 살펴보면 신앙심 깊은 사람의 임종장면이 표현되어 있다. 그의 옆에는 촛불을 들고 지켜봐 주는 수도승이 있고, 천사 하나가 죽음을 맞는 순간에도 기도하는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영혼을 받아들인다. 배경에는 그리스도와 성인들이, 사자가 마음을 돌려 그들에게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앞에는 괴기스러운 악마 떼들이 억울해하며 화가 나서 미치겠다’, ‘망신스럽다 ‘,망신스럽다‘ ‘아연실색했다’, ‘아무런 위안거리도 없다 ‘, 우리는 이 영혼을 잃어버렸다’며 분해하며 떠드는 것이 그려져 있다. 올바르게 죽는 법을 안다면 지옥도 악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구텐베르크는 목판술을 응용하여 틀 속에 낱개의 활자들을 함께 모아 인쇄하는 방법을 발명해 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15세기 후반에는 이 활자에 목판 삽화를 곁들여 응용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당시의 목판화는 그림을 인쇄하는 데는 비교적 거친 방식이었지만 그 거친 표현이 오히려 효과적인 경우도 있었다. 대중적으로 사용된 판화들은 마치 현시대의 잘 그려진 포스터를 떠올리게 하는데, 윤곽선이 간결하고 수법이 경제적이다. 그러나 당시의 미술가들은 이에 만족하지 못했다. 좀더 완벽하게 묘사하여 자신들의 관찰력과 기술을 발휘하고 싶어 했고, 그 수단으로 나무가 아닌 동판을 선택했다. 동판화는 목판화와는 그 방식이 달라서 뷰린이라고 부르는 전용 도구를 가지고 모양을 새기고 잉크를 바르고 전체적으로 닦아내면 홈이 파진 부분에만 잉크가 남게 되는데, 그 남은 잉크들이 파인 홈의 모양대로 찍혀 나오게 되는 것으로 볼록 판화인 목판화와는 반대인 오목 판화가 되는 것이다. 뷰린으로 동판을 긁어 모양을 내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었지만, 숙련된다면 동판 인쇄는 세부 묘사나 섬세한 효과들을 살리는데 매우 유용했다.  마르틴 숀가우어는 동판 술로 가장 유명한 작가였다. 그의 판화 성야‘는 네덜란드 거장들의 기풍을 반영하고 있다. 붓과 물감 없이 미술가로 성공했던 그의 작품을 보려면 돋보기를 이용해야 할 만큼 돌과 벽돌, 돌틈의, 벽돌 문 위의 담쟁이넝쿨, 동물의 털, 목동의 턱수염은 세밀하다. 뷰린을 들고 동판에 세세한 그림들을 새겨나가는 기교와 인내심도 찬탄할 만 하지만,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구성하는 능력 또한 훌륭한 것이었다.  성모 마리아는 마구간으로 사용되는 무너진 교회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 자신의 옷자락에 조심스레 눕힌 그리스도에게 경배하는 그녀의 옆에는 손에 등불을 든 요셉이 걱정스럽고 아버지다운 표정을 이를 지켜보고 있다. 황소와 당나귀도 그들과 함께 경배하고, 남루한 목동들이 문지방을 막 넘으려는 순간이다. 뒤에 있는 목동 중 한 사람이 천사로부터 계시를 받고 있고, 천사들은 온누리에 평화를’이라고 합창하고 있다. 모든 장면이 기독교 미술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림 위에 유연하게 연결된 구성과 방식은 숀가우어 자신만의 것이었다. 판화의 구성은 제단화의 구성과 유사한 면이 있다. 여백이 주는 암시와 인물을 묘사하는 실제에 대한 충실한 묘사가 균형을 이루며 조화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숀가우어는 이런 작업을 자신의 방식으로 잘 해결해나갔다. 부서진 벽돌담의 조각들은 장면에 짜임새를 주고, 배경이 되는 폐허는 강조되어야 할 인물을 돋보이게 할 수 있게 어둡게 무게를 줄 뿐 아니라 무미건조해질 수 있는 공백을 채워주는 장치가 되었다.

목판술과 동판 술은 곧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이탈리아에서는 만테냐와 보티첼리의 방식을 적용한 동판 술이 퍼져나갔고 네덜란드와 프랑스에서도 각자의 방식들이 퍼져나갔다. 이 판화들은 유럽의 미술가들이 서로의 관념을 받아들이는 수단이 되었고, 당시에는 다른 작가의 착상이나 구성을 모방하는 것을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인쇄술의 발명은 사상의 교류를 재촉했고, 이는 종교개혁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었다. 판화술은 르네상스 미술의 승리를 이끌었고 북유럽의 미술에서도 중세는 막을 내린다.

 

개인적으로 판화에 관심이 많은데, 판화가 언급되니 매우 반갑다. 어느 시대나 사람들은 끊임없이 더 나은 것들을 찾아내기 위해 고민과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지금은 당연해진 모든 것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과정을 알게 되니 내가 살아가고 작업하면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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