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러 세대에 세 번째로 유명한 독일의 화가 루카스 크라나흐의 그림 <이집트로 피신하는 중에 휴식을 취함>을 살펴보자. 숲이 우거진 산속의 샘가에서 휴식을 취하는 아기예수와 마리아, 요셉의 그림이다. 거친 침엽수림으로 둘러싼 아래쪽으로는 아름다운 골짜기와 들판이 펼쳐져있다. 작은 천사들이 아기예수에게 딸기를 드리거나, 조개껍질에 샘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받거나, 악기를 연주하며 피로에 지친 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시적이고 서정적인 참신한 구성이다.
만년의 크라나흐는 작센의 궁정 화가가 되었는데, 이 무렵의 그의 그림들은 유행을 쫓고 허영이 깃든 느낌이 들기도 하고 마르틴 루터와의 친분으로 유명세를 얻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가 도나우 지방에 머물렀다는 것만으로도 알프스 지역의 사람들에게 그들이 누리는 풍경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일깨우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라티스본의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는 숲과 산을 찾아가 풍화된 암석과 소나무의 모양을 연구하고 많은 수채화와 동판화등을 남겼다. 그의 유화 <풍경>을 보면 어떤 스토리나 인물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아무런 목적 없이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 자체를 즐기며 묘사했다. 종교나 역사와 같은 확고한 목적이 없는 단지 화가의 묘사 능력만으로 대중을 사로잡는 미술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북유럽 미술의 찬란한 전성기인 16세기 초엽의 네덜란드에서는 얀 반 아이크, 로지에 반 데르 바이덴, 후고 반 테르 구스 등등 뛰어난 화가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독일의 뒤러처럼 새로운 지식과 기술에 목말라했고, 옛 방식에 대한 집착과 새로운 지식의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다.
얀 호사르트, 혹은 마뷔즈라고 불리는 화가의 그림 <성모를 그리는 성 루가>를 보면 당시 화가들이 겪었던 그 갈등을 발견할 수 있다. 복음서의 저서의 루가의 직업은 화가였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그림 속의 루가는 성모와 아기 예수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중이다. 마뷔즈가 이 그림 속에서 인물을 묘사한 방식의 얀 반 아이크 및 그 추종자들의 전통과 흡사한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배경은 판이하게 다르다. 이탈리아 미술의 새로운 업적인 원근법과 고전기 건축에 대한 조예, 능숙한 명암 처리 등을 사용해 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이 작품은 대단히 매력적이지만 같은 소재의 북유럽 혹은 이탈리아 그림이 지닌 간결한 조화와는 거리가 멀다. 성 루가가 성 모자의 초상을 그렸으리라 생각하기엔 호화로운 궁전의 중정이 배경이 되기에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을 만큼 개연성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시기 가장 위대한 네덜란드 화가로 꼽히는 화가는 새로운 양식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고 도입하는 미술가들이 아니라 독일의 그뤼네발트처럼 새로운 물결을 거부한 미술가들 사이에서 찾아보게 된다. 히에로니무스 보쉬라는 화가를 살펴보자. 그의 인간적 삶에 대한 이야기는 나이조차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을 만큼 남겨진 것이 없다. 그가 그린 삼면화 <The haywain triptych>를 보면 그가 그리고자 하는 바를 최대한 실감나게 그려내기 위해 전통적 기법과 새로운 기법들을 동원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의 세계를 아주 그럴듯하게 구현해 냈다. 그는 지옥의 모습을 소름 끼치게 묘사했는데, 스페인의 필립 2세는 이 잔인한 환상을 담은 작품에 집착을 보이고 구입하기에 이르렀기에 현재 스페인에 보관되어 있다. 죄를 지은 영혼들은 벌을 받아 반인반수, 혹은 반은 인간 반은 기계가 된 채로 지옥에 떨어져 무서운 괴물과 끔찍한 악마, 뜨거운 화염으로부터 고통을 받고 절규한다. 이러한 그의 업적은 이미 본 것을 재현했던 이전 회화의 관념을 깨뜨리는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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