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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미술사

서양미술사 23_16세기 초 독일1_뒤러

by 즐거운담원 2022. 12. 27.

르네상스의 이탈리아 미술의 혁신적 업적들, 고전적 지혜와 예술의 가치는 알프스 이북의 사람들에게도 인상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이탈리아 미술 거장들의 세 가지 업적, 원근법과 해부학, 고전 시대의 건축 형식에 대한 지식에 주목했다. 이 충격적인 지식들을 접한 북유럽의 미술가들의 반응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새로움을 받아들이는데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건축가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익숙하게 알고 있는 고딕 건축양식과 새롭게 다시 태어난 고전기의 건축양식은 모두 다 논리와 일관성을 갖추고 있었지만 목적과 정신의 측면으로 살펴보면 판이하게 다른 것이었기에 알프스 이북의 건축에 새로운 유행이 채택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새로운 건축양식은 유행에 뒤처지기 싫어하는 제후나 귀족들의 요구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막상 건물을 짓는 건축가들은 피상적인 장식을 첨가할 뿐 기본 토대인 건물의 본체에는 고딕양식을 그대로 사용해 수정하지는 않았다. 고전적 규칙을 완벽하게 여기는 이탈리아 미술가는 이런 것에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시각에서 뜯어보면 조화되지 않는 양식에 포함된 교묘함과 기발함을 보고 감탄할 점도 있다.

 

그러나 화가나 조각가의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그들은 새로운 미술 원리를 철저히 이해하고 그 유용성에 대해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위대한 독일의 미술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작업에서 그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알브레히트 뒤러는 뉘렌베르크에 정착한 금 세공인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소묘에 놀랄만한 재능을 보였고 뉘른베르크의 거장 미헬볼게무트가 운영하는 제작소에서 도제수업을 마치고 나서는 당시 중세 장인들의 관례대로 시야를 넓히고 정착할 곳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났다. 그는 당대 최고의 동판화가 마르틴 숀가우어를 만나러 갔지만 거장은 이미 숨을 거두었기에 숀가우어의 형제들과 머물다가 문예와 서적 교역의 중심지였던 스위스 바젤로 이동했다. 스위스 바젤에서 서적에 쓰일 목판화를 제작하고 다시 북부 이탈리아로 여행하며 사물을 관찰하고 수채화를 그리고 거장의 작품들을 연구했다. 뉘른베르크로 돌아온 그는 가정을 꾸리고 자신의 제작소를 열었는데 남유럽의 모든 기법과 지식을 갖춘 북유럽의 미술가가 되어 있었다. 그는 기술적 지식과 더불어 감수성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초기 걸작 가운데 하나는 요한계시록을 묘사한 대형 목판화로 최후 심판의 날의 송포스러운 장면들을 생생하게 시각화했다. 뒤러의 상상력은 중세 말엽 교회제도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가졌던 당시의 사회 분위기에 기반은 둔 것으로 보인다.

뒤러의 요한계시록

미카엘 대천사와 그의 사자들이 창공에서 용과 전쟁을 하는 엄청난 장면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이전 화가들이 그린 우아하고 평안하고 손쉽게 적을 처리하는 영웅의 모습을 버린 뒤러는 하늘에서 용의 목을 찌르기 위해 두 손에 필사의 힘을 실어 전력을 다하는 장면과 궁수와 검사, 덤벼드는 무서운 괴물들을 묘사하고 평화로운 땅의 풍경을 펼침으로 자신의 심상을 화면에 꺼내 놓았다. 그는 자연을 모방하여 묘사하는데 노력했지만 숙달 자체가 목표는 아니었고, 그가 그리는 유화와 판화 등의 작품에 이야기들을 더욱 실감 나는 광경을 만들어내기 위해서였고 이러한 인내심은 싫증을 느끼지 않는 진정한 동판화가로 그를 만들었다.

뒤러 예수탄생

뒤러의 판화 <예수탄생>을 살펴보자. 숀가우어의 동판화에서 택했던 주제를 자신의 방식으로 묘사했는데, 금이 간 회벽, 엉성한 타일, 나무가 자라 허물어진 벽, 지붕의 널판지에 자리 잡은 새 둥우리와 같은 충실한 묘사를 한 낡은 집에 비하며 인물은 왜소하고 비중 없이 그려진 듯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낡은 헛간에 아기예수를 눕힐 자리를 마련하고 무릎 꿇은 마리아, 물을 긷는 요셉, 경배하는 목자, 창공에 기쁜 소식을 알리는 천사가 아주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낡은 폐가와 초라한 방문객의 목가적인 평화는 뒤러가 떠올린 경건한 성야의 기적이었으리라.

뒤러 아담과 이브

뒤러의 동판화는 완벽한 단계라 말할 수 있을 정도였으나 그는 이탈리아 미술가들이 부여한 새로운 목적을 향했다. 고딕 미술에서는 외면 당했으나 새로운 미술의 관심사로 부상한 이상적인 아름다운 인체의 표현이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충실히 묘사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던 그는 방법을 찾아 나섰다. 인간의 형태에서 무엇이 미를 만드는지를 설명하는 법칙을 찾고자 했던 것이다. 여러 가지 비례의 법칙에 대한 뒤러는 여러 가지 실험을 했는데, 올바른 조화를 발견하기 위해 일부러 과도하게 길게 혹은 넓게 왜곡, 변형시키기도 했다. 그의 평생에 걸친 이런 탐구의 첫 결과 중 하나가 판화 <아담과 이브>다. 뒤러의 미와 조화에 대한 새로운 이념이 구현된 작품이다. 고양이 옆에 조용히 누운 쥐, 수사슴과 암소, 토끼 앵무새가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에덴동산, 선악과를 이브에게 주는 뱀과 그것을 받기 위해 손을 뻗은 아담이 그려진 이 그림은 나무와 어두운 숲의 그늘과 대조적으로 하얗고 우아하게 윤곽이 드러난 인체는 뒤러의 노력이 묻어난다. 북유럽의 토대에 남유럽의 이상을 이식하려는 진지한 시도였다.

 

그러나 그에 만족하지 않았던 그는 시야를 넓히기 위해 베네치아로 여행을 떠나는 등 끊임없이 탐구하는 일생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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