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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미술사

서양미술사 27_16세기 말 유럽 2

by 즐거운담원 2023. 1. 11.

이렇게 필사적으로 돌파구를 찾던 미술가들과 다른 길을 걷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전 세대 거인들의 그림자를 벗어나려고 절망적인 몸부림을 치기보다는 평범한 수준의 기량과 솜씨에 만족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충분히 놀랄만한 성과를 이루는 이들도 있었다. 지오반니 다 볼로냐, 혹은 장 드 블로뉴가 제작한 조각상 <머큐리>는 놀랍다. 중력을 무시하고 공중을 날아다니는 조각을 만들기 위해 그는 거의 불가능한 도전을 했던 것이다. 무거운 청동의 조각상은 남풍을 불어내는 가면의 입바람 위에 발끝을 디디고 가볍게 떠올라 속도감 있게 날아가는 듯 보인다. 고전 시대의 조각가라면 선택하지 않았을 주제와 재료의 조합일 것이다. 기존의 소재와 기법을 택하면서도 예기치 못한 효과를 이룩한 경우였던 것이다.

장 드 블로뉴_머큐리

16세기 후반기의 미술가들 중 가장 뛰어난 사람은 야코포 로부스티, 통칭 틴토레토다. 그 역시 형태와 색채의 단순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에 진력이 났다. 틴토레토는 아름다움을 표현해 낸 화가로서 전세대의 티치아노의 작품은 감탄을 자아내는 것이었지만 감동적이지는 않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는 아름답고 조화로운 그림보다는 그리는 장면의 긴장감과 극적인 분위기를 표현한 그림을 그리는 것에 매진했다. 

 

그의 그림 <성마르코 유해의 발견>을 살펴보자. 이 기발하고 매혹적인 그림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기존의 성화들처럼 인물들이 질서있게 배치되어 있지도 않고, 아름답고 조화로운 색감이 펼쳐지지도 않는다. 배경으로 그려진 궁륭은 이상하게 뚫려 있고, 인물들의 배치와 자세는 괴이하다. 왼쪽에는 후광이 빛나는 장대한 사람이 한 손에는 책을 끼고 다른 손은 무엇인가 저지하려는 듯 쳐들고 있다. 그 아래에 깔린 양탄자 위에는 괴이한 단축법으로 그려진 시체가 누워있다. 화면 중앙에는 화려한 차림새의 노인이 무릎을 꿇고 있다. 오른쪽 상단에는 두 사람이 묘소에서 시신을 끌어내 내려놓는 중이고, 아래에서는 터번을 두른 남자가 그 시신을 받아내리고 있다. 오른쪽 하단에는 한 무리의 남녀들이 깜짝 놀란 몸짓을 하고 있거나 몸부림을 치고 있다. 

틴토레토_성 마르코 유해의 발견

이 그림은 성 마르코의 유해를 회교도들의 도시인 알렉산드리아에서 베네치아로 옮겨왔던 이야기 중의 한 장면이다. 성 마르코는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로서 그곳의 지하 묘굴에 매장되었는데, 이후 성인의 유해를 베네치아로 옮겨 오고자 했던 베네치아 사람들이 유해를 찾으려고 지하 묘굴에 들어갔으나 많은 묘소 가운데 성인의 것을 찾지 못해 동분서주 뒤지고 있었다. 그때 성인이 현신하여 자신의 유해 옆에 서서 더 이상 다른 묘소를 헤집지 않도록 제지하는 장면이다. 이 기적의 현장에 있던 오른쪽 하단 남자의 몸에서는 연기처럼 빠져 도망가는 악마의 모습도 보인다. 가운데서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화려한 노인은 이 그림의 헌납자인 귀족이다. 그림 속의 인물들은 빛과 어둠, 원경과 근경의 극단적인 대조와 부조화스러울 만큼의 격동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런 비범한 표현들은 기적의 순간을 아주 인상적으로 표현해 냈다. 비록 그의 그림이 지오르지오네와 티치아노와 같은 감미로운 색채의 아름다움이나 조화를 희생했지만 다른 수확을 얻어낸 것이다.

틴토레토_용과 싸우는 성 게오르기우스

틴토레토의 다른 그림 <용과 싸우는 성 게오르기우스>를 살펴보면 빛은 음산하고 색채는 불안정하다. 그러나 이러한 부조화는 긴장과 흥분의 느낌을 강조하는 훌륭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따. 몸을 피하는 공주는 감장하고 있는 이들을 향해 화면을 뚫고 뛰어나올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주인공인 성 게오르기우스는 화면의 저 뒤편, 배경 속으로 멀리 자리를 잡고 있다. 일반적으로 주인공을 강조하고 부각하는 구성과는 아주 상반되어 있다. 이러한 파격과 섬세하지 못한 마무리에 전기의 선배 화가들은 유감을 표현했지만 틴토레토와 같은 이는 사람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는 것에 집중하고 전설과 신화들을 참신하게 표현하는 방법에 대한 탐구에 매달렸다. 그는 자신이 떠올리고 상상한 바를 전달하는 것을 성공으로 여겼기 때문에 매끈하고 세심한 마무리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이 미비한 마무리가 감상자에게 상상할 여지를 주는 효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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