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초의 유럽 회화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티치아노, 레오나르도 등 위대한 작가들은 이전 세대의 이상을 실현해 냈고, 미와 조화를 올바르게 결합하는 방법을 보여주었고, 고대 그리스 로마의 유명한 조각을 능가한다는 평가마저 받아냈다.
그러나 거대한 업적들을 이어받아야 하는 입장에 선 후학들에게는 이런 업적들이 부담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 이룩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이미 다 이루어져서 더 이상 해볼 것이 없는 허탈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일부 미술 지망생들은 미켈란젤로의 업적들을 배우려고 노력하고 모방하려 했다. 미켈란젤로가 즐겨 그렸던 난도가 높고 까다로운 자세의 나체상들을 그대로 베끼고 따라 하며 어떤 그림에나 무분별하게 집어넣어 때때로 우스꽝스러운 결과를 남기기도 했다. 성서의 장면을 그린 그림에 근육이 발달한 나체 인물들로 가득 채워 그린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생겨난 말이 매너리즘이다. 당시의 젊은 화가들이 미켈란젤로의 정신은 배우지 않고 기법, 즉 매너 만을 모방하여 그리는 추세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였다.
그러나 그 시대의 젊은 미술가들이 다 그렇게 어리석은 모방만을 답습한 것은 아니었다. 과연 미술의 발전이 정말로 정점에 올라 이전거장들을 능가하는 것이 불가능한지, 더이상 다른 발전 가능성은 없는지에 의문을 가진 이들도 많았다. 그들은 터무니없을 만큼 기발한 착상으로 거장들을 넘어서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곤 했다. 이런 이들은 그들의 그림에 상징적인 의미와 해박한 지식을 담곤 했는데, 그들이 숨겨둔 이집트의 상형문자나 잊힌 고대 저술가들의 지식들은 마치 수수께끼와 같아서 이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굉장한 학식을 지닌 학자들 뿐이었다.
또 어떤 이들은 거장들의 작품에 비해 자연스럽지못하고 애매하고 명확하지 않으며 통일성이 부족한 작품을 그려내어 일부러 관심을 끌고자 했다. 그들은 너무 완벽한 것은 익숙해지고 나면 오히려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고 주장하며 놀랍고 기발하고 획기적인 어떤 것들을 추구했다. 거대하게 자리 잡은 전대의 거장들을 어떻게 해서라도 넘어서겠다는 이 젊은 미술가들은 강방적이고 어딘가 건전치 못한 구석이 있었고 그들 중 가장 뛰어난 자들은 괴상하고 쓸데없는 복잡한 실험을 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이런 광기 어린 노력은 위대한 선배들에 대한 최고의 찬사이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이 위대한 선진들 역시 시대를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실험을 거듭하며 모든 관례를 대담하게 무시하고 고전적 전통의 신성불가침한 법칙들을 내팽개쳐 버리기도 한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이야 말로 기발한 착상과 창안을 찬양하도록 본보기를 만든 장본인들이었다.
이런 면을 본 젊은 미술가들이 '독창성'에 집중한 것은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그들의 노력은 때로 재미있는 디자인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건축가이자 화가인 페데리코 주카리가 디자인한 주카리 궁전의 문과 창문은 좋은 예이다.
또 다른 건축가들은 그들의 박식함과 지식을 과시하는데 여념이 없었고, 그런 점에 있어서는 브라만테를 뛰어넘었다. 건축가 안드레아 팔라디오는 그 중에서도 뛰어난 사람이었는데, 그의 건축물 <빌라로툰다> 역시 기발한 착안이라 할 수 있다. 이 건물은 중앙의 홀을 축으로 사면이 동일한 형태를 이루고 있고, 각각 같은 형태의 현관을 갖고 있어서 로마의 판테온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그 구성이 아무리 아름답고 신기해 보이더라도 실용성에는 문제가 있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미술가는 피렌체의 조각가이며 금은 세공가인 벤베누토 첼리니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자만스럽고 무모하고 허영심이 강했으며 악명이 높았다. 그가 자신의 생애를 기록한 책 속에는 소설처럼 재미있게 엮은 다채롭고 생생한 이야기와 자료들이 들어있다. 그는 공명심이 강한 사람이었고, 사회지도층의 호의와 지지를 구할만한 대가가 되고자 했다. 그가 만든 <소금그릇>은 땅과 바다를 표현하고 있는데, 남성으로 표현된 해신의 옆에는 소금 용기를, 여성으로 표현된 대지의 여신의 곁에는 후추 용기를 배치했고 땅과 바다가 어떻게 서로 스미는가를 표현하기 위해 두 신의 다리를 맞물리게끔 위치시켰다. 첼리니는 기발하고 비범하기만 하다면 어떤 것이라도 만들겠다는 그 시대의 병적이고 불안정한 시도들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회화에서도 이와 같은 태도를 보여주는 화가 파르미지아니노가 있었다. 그의 그림 <목이 긴 성모>는 가식과 지나친 기교들로 가득해서 논란과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림 속의 성모는 그리스 로마의 신상들처럼 몸의 윤곽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그려져 있고, 비정상적으로 긴 목과 손가락은 비례를 무시한다. 아기 예수의 신체 비례 역시 기이하게 늘어져 있고, 두루마리를 들고 있는 왜소한 예언자와 뒤편의 원주도 괴상하고 어울리지 않는다. 이 화가는 의도적으로 조화와는 거리가 먼 화면의 구성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천사들은 왼쪽 구석에 몰아넣고, 오른쪽은 허전하게 비워두었다. 그는 조화롭고 자연스러운 단순함은 미를 표현하는 방법의 전부가 아닌 한 가지 방법일 뿐이라고 말한다. 다양한 취향을 지닌 감상자들의 흥미를 끄는 데는 다양한 길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딘가에 존재할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노력에 모든 것을 걸었던 파르미지아니노를 비롯한 미술가들은 아마도 최초의 '현대적' 미술의 선구자일 수도 있다. '현대미술'이라 일컬어지는 오늘날의 미술은 전통적인 소박한 아름다움과는 별개의 다른 어떤 효과를 찾고자 하는 욕망에 근본을 두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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