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개신교 국가 중 종교 개혁이 몰고 온 미술의 위기를 무사히 넘긴 나라도 있었다. 바로 네덜란드다. 네덜란드의 회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융성한 발전을 이루었으며 미술가들은 곤경을 극복할 길을 발견해 냈다. 초상화에만 매달려 곤혹스러워 하기보다는 개신교 교회가 반대하지 않는 모든 종류의 주제를 전문화하는 것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갔다.
일찍이 반 아이크 시대 이래로 네덜란드의 미술가들은 자연을 완벽히 모방하는 솜씨로 인정받아왔다. 자부심 넘치는 이탈리아의 화가들조차 꽃, 나무, 헛간, 양 떼 등의 자연물의 묘사에 있어서는 이 '플랑드르의 화가들'에게 한수 물러나 뛰어남을 인정할 정도였다. 종교회화의 주문을 더 이상 받을 수 없어진 북유럽의 미술가들은 그들의 특기를 내놓을 시장을 발견하려고 애썼고, 이 과정에서 그들이 자신들의 묘사 솜씨를 최대한 내보이려 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화가들은 이전부터 이미 주제에 따른 전문화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 예로 이에로니무스 보슈는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지옥과 악마의 그림에 전문가로 자리 잡은 것을 들 수 있겠다. 작업의 영역에 제한이 생겼으니 화가들은 전문 분야를 정하려고 했고, 일상생활의 장면을 묘사한 소위 '풍속화'가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16세기 플랑드르 최대의 풍속화가로는 피터 브뤼겔을 꼽을 수 있다. 브뤼겔이 주로 그렸던 그림의 종류는 농민들의 생활 장면이었다. 그는 농부들이 흥겹게 잔치를 하거나 일하는 모습을 즐겨 그렸다. 브뤼겔이 그린 <농부의 혼인잔치>는 매우 유명한 작품이다. 혼인잔치는 헛간에서 벌어졌다. 신부는 푸른 휘장이 드리워진 앞에 두 손을 모으고 다소곳이 미소를 지은 채 앉아 있는데, 그녀의 머리 위에는 관이 매달려 있다. 이 그림에서 신랑이 누구인지는 여러 추측이 난무할 뿐, 정확히 명시되어 있지는 않다.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정신없이 음식을 먹고, 누군가를 맥주를 술병에 담고 있는데, 그 밑 바구니에는 술병들이 가득하다. 흰 앞치마를 두른 남자 둘은 들것에 음식을 가득 실어 나르고, 그 옆에 앉은 남자가 들것에서 음식 접시를 집어 들고 있다. 바닥에 주저앉은 아이는 정신없이 접시를 핥아먹고 있고, 식탁의 끄트머리에는 촌장으로 보이는 남자와 수도사가 그들만의 대화에 열중하고 있다.
현장감과 생동감이 넘치는 꾸밈없는 잔치장면으로 보이지만 브뤼겔은 생김새도 옷차림도 자세도 행동도 다른 사람들로 가득한 이 복잡한 장면을 조금도 번잡해 보이지 않도록 구성해냈다. 원근법을 적용한 식탁은 화면에 깊이를 주어 시선을 뒤편까지 끌어가지만, 이내 인물들의 흐름을 따라 다시 앞쪽으로 시선을 끌어와 맨 앞의 들것을 든 남자들과 접시를 집어드는 남자의 사이로 보이는 미소 짓는 신부의 얼굴로 순환하게 한다. 한없이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은 이 그림들을 그리며 브뤼겔은 풍속화라는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발견했고, 그 이후 다른 네덜란드 화가들도 그곳을 개척하기 위해 매진했던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이 위기의 시대가 또 다른 변화를 가져왔다. 이탈리아와 북유럽 사이에 자리잡은 프랑스의 미술가들은 양측으로부터 모두 영향을 받게 되었다. 프랑스 중세 미술의 전통은 굳건하여 이탈리아 양식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상류계급은 첼리니의 작품과 같은 유형의 세련되고 우아한 풍의 매너리즘 양식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프랑스 조각가 장 구종의 <님프>는 <순진무구한 자들의 샘>의 일부분인데, 더할 나위 없이 우아한 인물의 모습과 좁은 면적에 다양한 인물의 포즈를 배치하는 방법에서는 파르미지아니노와 지오반니 다 볼로냐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장 구종의 한 세대 이후, 이탈리아 매너리즘 화가들의 기발한 발상을 브뤼겔의 정신으로 표현한 동판화가 자크 칼로가 등장했다. 틴토레토, 엘 그레코처럼 그는 키가 크고 음산한 인물들, 기묘한 조망을 놀라운 방법으로 결합시키는 것을 즐겼다. 브뤼겔처럼 부랑자, 군인, 장애자, 거지, 떠돌이 악사 등의 모습을 소재로 삼아 그렸다. 그의 동판화 <두 이탈리아 광대>를 보면 그의 광기 어린 작품 경향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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