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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미술사

서양미술사 31_17세기 초반의 유럽 2

by 즐거운담원 2023. 1. 29.

매너리즘의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지닌 양식으로 발전하게 되는 과정은 건축의 과정과 유사하다. 우리는 틴토레토와 엘 그레코의 위대한 작품들 속에서 17세기 회화에 있어서 중요성을 지니게 되는 새로운 이념들의 성장을 엿볼 수 있다. 빛과 색채의 강조라거나 단순한 균형을 무시한 복잡한 구도 등이 그렇다. 17세기의 회화는 상투적인 틀에 박혀 버린 매너리즘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시기의 사람들은 미술을 화제로 대화하는 것을 즐겼는데, 특히나 로마에서는 인텔리들이 여러 가지 미술 동향이나 운동에 관한 토론을 일삼고 당시의 미술과 이전시대의 거장을 비교하며 논쟁을 하곤 했다. 이러한 논쟁은 미술의 세계에 있어서 거의 처음 있는 현상이었다. 이전에 있었던 미술에 대한 논쟁이라는 것은 회화가 조각보다 더 나은가, 구도보다 색채가 중요하다든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하는 것이었지만 쟁점이 바뀐 것이다. 그들은 북부 이탈리아에서 로마로 온 서로 아주 다른 두 작가를 놓고 언쟁을 벌였다. 볼로냐 출신의 안니발레 카라치와 밀라노 인근 출신인 미켈란젤로 다 카라바지오가 그들이다. 이 두 화가는 둘 다 매너리즘에 진저리를 쳤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판이하게 달랐다.

 

안니발레 카라치

안니발레 카라치_그리스도를 애도하는 성모

안니발레 카라치는 베네치아의 코레지오 파의 미술을 배운 화가들 중 하나였고, 로마에 와서 라파엘로의 작품을 보고 매료되었다. 그는 매너리즘 화가들이 의도적으로 거부했던 라파엘로의 단순한 조화미를 다시 회복시키고자 했다. 후세의 비평가들은 그가 과거 거장들의 장점들만을 골라 모방한다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그는 진정 훌륭한 화가로 그런 치졸한 방법을 쓰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제단화 <그리스도를 애도하는 성모>를 보면 그가 추구한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카라치는 감상자가 죽음의 고통과 공포를 느끼지 않게 하고 싶었다. 그림의 구성은 초기 르네상스의 거장들의 것처럼 단순하고 조화롭지만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구세주의 몸 위에 어린 빛의 묘사나 감정에 대한 표현 방식이야말로 바로크적이다. 자칫 그저 감상적인 그림으로 치부될 수도 있지만 촛불을 켜고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명상하는 신도들을 위한 제단화로서의 이 그림은 그 목적에 완벽히 부합한다.

 

미켈란젤로 다 카라바지오

 

카라치와 카라바지오, 이 두 화가는 매우 절친한 사이였지만 카라바지오는 카라치의 그림과 방식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카라바지오는 그림에서 추한 부분을 배제하는 카라치의 방식을 약점이라 생각했다. 그는 눈에 보인느 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을 추구했다. 이상적인 미를 추구하거나 고전적 규범을 따르는 것을 싫어하여 아주 새로운 길을 생각해 내려고 애썼다. 그를 비난하는 비평가들은 카라바지오의 그림의 목적이 보는 이에게 충격을 주는 것일 뿐, 미와 전통에 대한 존중을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지만 그는 예술가로서 자신의 작업에 진지하게 임하며 그런 구설을 무시했다. 그러부터 삼백 년도 더 지난 지금에 보아도 그의 작품은 아주 대담하게 보인다. 

 

그의 그림 <성 토마스의 의심>을 보자. 부활한 예수와 그를 바라보는 세 사도가 있다. 그 중 한 명은 예수의 옆구리 상처에 손가락을 넣어 확인하고 있다.  그 당시의 신앙 깊은 신도가 이 그림을 보기에 이 그림은 불경하고 무도하기 짝이 없는 충격적인 그림이었을 것이다. 아름답게 묘사된 기존의 그림 속 사도들에 익숙해진 신도들에게 어깨가 뜯어진 누더기 옷을 입고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새겨진 막일꾼 같은 사도들의 모습에 거부감을 느꼈을 테지만, 아마도 카라바지오는 당당히 대꾸했을 것이다. 사도들은 실제로 나이 든 노동자들이었고 예수를 의심하는 토마스의 이야기는 분명히 성서에 존재하는 내용이라고.

카라바지오_성 토마스의 의심

"예수가 토마스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네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고 믿음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돼라." -요한복음 20:27

 

카라바지오의 자연주의, 그것이 추하든 아름답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겠다는 마음은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보다는 더 깊은 신앙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리라. 성서의 이야기가 마치 바로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인 것처럼 그려내고자 했던 위대한 화가였다. 그려내는 장면을 진실하고 실감 나게 표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는데, 그가 이용한 빛과 그림자의 처리방식은 남다르다. 인체를 우아하고 부드럽게 보이기 위한 빛이 아니라 깊은 어둠과의 강렬한 대조를 이루는 거센 빛이다. 이 거칠고 거센 빛은 장면 전체를 정직하게 드러내준다. 그러나 당시에는 올바르게 평가받지 못했고 후세의 화가들에게 이르러서야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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