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건축
르네상스 시대의 뒤를 이은 양식을 보통 바로크 양식이라고 부른다. 르네상스 이전의 양식들은 그 특징들이 뚜렷하기 때문에 식별하기가 쉬운 것에 비하면 바로크의 것들은 그리 단순하지 않은데, 이것은 그 이전의 여러 가지 양식들이 오늘날까지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원주, 벽기둥, 처마도리, 엔타블라처(보), 쇠시리 같은 것들은 기본적인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시대의 취향과 유행에 따라 변화를 거쳤다. 그 변화에 따라 개별적 명칭이 생겨났다. 그러나 그런 명칭들은 생겨난 당시에는 그릇된 의미나 조롱의 의미로 언급된 사례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자면 도시를 침략했던 고드족으로부터 유입된 양식인 '고딕', 16세기말 미술가들의 가식이나 모방을 비평하기 위해 사용한 '매너리즘'과 더불어 이제부터 우리가 이야기할 '바로크'양식도 그러하다. 바로크라는 말은 황당무계하거나 괴기스럽다는 의미로서, 당시의 비평가들이 고전시대 건축의 규칙을 무시하는 것을 타락으로 여기며 비난하느라 사용했던 단어였다.
로마에 있는 일제수 성당은 사실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당연하고 대단치않은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이미 우리는 이런 류의 양식을 모방한 건물들을 너무나 익숙하게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1575년의 로마에서는 어마어마하게 혁명적인 건물이었다. 유럽 전역에 퍼져나간 신교의 세력에 대항하려는 구교의 위세를 대표했던 제수잇 교단의 교회당이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방식의 원형의 대칭 구조 교회당 설계는 신애의 봉사에 부적당하다고 외면당했고, 단순하고 독창적인 설계가 고안되어 널리 퍼졌는데, 이 새로운 교회당은 높고 위풍당당한 원개를 지닌 십자가형 구조였다. 동랑이라고 불리는 커다란 장방형의 공간에서는 신자들이 모여 제단을 방해 없이 바라볼 수 있었고 동랑의 양쪽에는 작은 예배실들과 각각의 전용 제단이 나란히 늘어서 있고 십자가의 양팔에 해당하는 부분의 끝에는 두 개의 보다 큰 예배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중세 교회당의 특징인 주제단이 강조되는 장방형 형태에 장대한 궁륭을 통해 흘러들어오는 널따란 내부를 강조하는 르네상스 식의 설계방식을 결합한 것이다.
자코모 델라 포르타는 일제수 성당의 정면 현관을 설계한 건축가이다. 새로운 내부 설계와 마찬가지로 이 교회당의 정면은 매우 독창적인 것이었다. 이 정면의 디자인은 후대의 교회당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아키트레이브를 받치는 원주나 반원주, 벽기둥들이 있고 그 위에는 상층을 받쳐주는 높은 아틱이 있다. 중앙의 양쪽으로는 원주를 지닌 대현관과 좌우 양쪽으로 두개의 작은 현관이 있다. 이는 고대 로마의 개선문을 떠올리게 하지만 고전적 건축 요소들이 융합된 방식은 기존의 방식을 도외시하고 있다. 이 정면 현관의 놀라운 첫 번째 특징은 원주나 벽기둥이 이중으로 되어 호화스럽고 다채로우며 장엄해 보인다. 두 번째 특징은 단조로운 중복을 피하고 이중으로 강조된 대현관이 있는 중심부에 초점을 두기 위해 각 부분의 배치에 매우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는 점이다. 포르타는 모든 부분이 전체적인 효과를 이루도록 애썼는데, 고전시대 건축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소용돌이 형태를 사용한 것이 그렇다. 그런데 바로크 건축에 대한 비난의 근원이 바로 이 곡선과 나선 형태에 있었다. 그러나 이 변칙적인 곡선의 장식들이 없다면 이 건물은 통일성을 잃고 흩어진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바로크 건축가들은 커다란 전체를 한 가지 통일성과 일관성으로 묶기 위해 보다 대담하고 흔치 않은 방법들을 사용했다. 이러한 방법들을 단독으로 떼어놓고 본다면 자칫 기괴해 보일 수 있으나, 건축가의 의도를 완성시키는데는 매우 효과적인 요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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