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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미술사

서양미술사 33_17세기 초반의 유럽 4

by 즐거운담원 2023. 2. 7.

루벤스

 

북유럽 사람으로서 카라치와 카라바지오 시대의 분위기를 직접 대면한 플랑드르 출신의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는 귀도 레니와 비슷한 연배로 한참 감수성 예민할 스물세 살에 로마에 왔고, 때는 1600년이었다. 로마와 제노바, 만토바에서 수많은 미술에 대한 논쟁을 귀담아듣고 고금의 명작을 연구했지만, 어떤 '운동' 혹은 '유파'에 몸 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기질적으로 그는 반 아이크, 로지에 반데르 바이덴, 브뤼겔을 배출한 플랑드르의 화가였다. 사물의 다채로운 표면, 즉 옷감이나 피부의 질감을 충실하게 표현하기에 몰두했던 그들은 이탈리아 화가들이 거의 신성시했던 미의 전형을 찾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고 장중한 주제에 대해서도 무감했다. 이탈리아에서 발전한 새로운 미술은 그에게 감탄과 영감을 주었지만, 자기 주의 세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그림으로 옮겨서 사물의 다양하고 생생한 아름다움을 전하겠다는 그의 신념은 흔들림이 없었다.

 

 

1608년 이탈리아에서 수학을 마치고 안트워프로 돌아온 루벤스는 나체의 인물이든 옷을 입은 인물이든, 갑옷이든 보석이든 모든 재료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대규모의 작품도 거뜬히 구성할 수 있는 기량이 있었다. 작은 그림만을 그려왔던 이전의 플랑드르 화가들은 소화해 낼 수 없었던 이탈리아의 문화, 교회와 궁전을 장식하는 거대한 그림에 대한 취미를 들여온 것이 바로 그였다. 이것은 군주들이나 사제들의 취향에 잘 들어 맞았고, 그는 거대한 화면 속에 인물들을 배치하고 표현하기 위해 빛과 색채를 사용하는 것을 연구했다. 안트워프 교회당의 주제단을 장식하는 그림을 위한 습작인 <성 카타리나의 약혼>은 오랫동안 여러 미술가들이 선택했던 유서 깊고 전통적인 주제를 그가 얼마나 자유자재로 다루어냈는지 보여준다.

루벤스_성 카타리나의 약혼

이전의 어떤 작품보다 빛과 운동감과 공간감이 넘치고,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축제와 같은 분위기 속에 높은 왕좌에 자리잡은 성모의 주변으로 성인들이 모여든다. 주교 아우구스티누스와 불에 달군 격자를 든 성 로렌초, 톨레티노의 성 니콜라우스, 용을 데리고 있는 성 게오르기우스, 화살과 화살통을 든 성 세바스티아누스가 보인다. 순교의 상징인 종려나무 가지를 든 무사가 무릎을 꿇으려 하고 수녀와 여인들이 아기 예수가 내미는 반지를 받으려는 카타리나를 쳐다보고 있다. 이 장면은 성 카타리나가 보았다는 환상인데, 이 환상을 본 그녀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왕좌 뒤에는 성 요셉과 열쇠를 든 성 베드로, 칼을 든 성 바오로가, 그 맞은편에는 성 요한이 보인다. 귀여운 천사들은 각자의 역할을 다 하고 있는데, 반지를 받으려는 카타리나를 돕거나, 어린양을 왕좌의 계단으로 이끌거나, 성모에게 월계관을 씌워주러 날아오고 있다. 흥겹고 즐거운 축제를 연상시키는 부분 부분들을 연결하여 전체를 장엄한 분위기로 완성한 것이다. 

 

이런 대단한 솜씨에 주문이 쇄도했지만 사람을 다루는 것에 있어서도 비상하고 매력이 넘쳤던 루벤스는 많은 재능있는 화가들이 기꺼이 제자나 조수로서 그를 추종하게 했다. 새로운 큰 그림을 주문받으면 작은 사이지의 채색 스케치를 휘하의 화가들에게 맡기는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루벤스의 구상에 따라 제자나 조수들이 밑그림과 채색을 마치고 나면 루벤스가 마무리하는 식이었는데, 그의 손길이 닿기만 하면 모든 것이 마술처럼 생기를 얻어 살아 숨 쉬는 것이 되곤 했다고 한다.

루벤스_어린아이의 머리

그의 이러한 기량은 그의 딸 클라라 세레나 루벤스의 초상화로 추정되는 <어린아이의 머리>에 아주 잘 드러난다. 복잡한 구도상의 기교도 화려한 의상이나 인위적으로 흘러 넘치는 빛도 느껴지지 않는 그저 정면의 초상화임에도 그림 속의 소녀는 살아있는 듯 너무나 생생하다.

 

루벤스의 천부적인 구성력과 화필을 다루는 탁월한 솜씨는 왕과 제후들의 권력을 미화하는데 더없이 적절했기에 그는 그 이전 어떤 화가도 누려보지 못했던 명성을 누릴 수 있었다.  그의 <자화상>을 보면 귀족임을 증명하는 패도를 지니고 있는 모습인데, 이는 그가 자신의 독특한 지위를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루벤스_자화상

당시의 유럽은 삼십년 전쟁과 영국의 내란으로 긴장이 팽배한 상황이었다. 가톨릭 압제에 저항하는 신교국 네덜란드와 스페인에 충성을 서약한 안트워프 중심의 가톨릭의 플랑드르로 대립이 첨예한 상황에 가톨릭 진영의 화가였던 루벤스는 더더욱 독자적인 지위에 올라섰다. 안트워프의 제수잇 교단과 플랑드르의 군주들, 프랑스 국왕 루이 13세와 그 모친 마리아 데 메디치, 스페인 국왕 필립 3세, 그에게 작위까지 수여했던 영국왕 찰스 1세로부터 많은 그림을 주문받고 궁정을 오가며 외교적 임무를 맡기도 했다. 

루벤스_평화와 축복에 대한 알레고리

그의 작업실에서는 쏟아져 나온 수 많은 그림들 중에는 고전적 우화와 우의적 발상을 실감 나게 그려낸 것들 또한 많았는데, <평화와 축복에 대한 알레고리>는 루벤스가 스페인과 화평을 설득하고자 하는 시기에 영국 국왕 찰스 1세에게 선물로 가져갔던 외교적 의도가 담긴 그림이었다. 지혜와 기예의 여신 미네르바의 뒤에 투구를 쓴 아테나가 군신 마르스와 복수의 여신 알렉토를 쫓아내고 있다. 미네르바는 어린 풍요의 신에게 젖을 먹이고 목신 사티로스는 아이들에게 과일을 건네고 있다. 과실과 금과 보석으로 치장한 박쿠스의 동료 여사제와 고양이 같이 평화로운 표범, 전쟁의 두려움에서 평화와 풍요의 안식처로 피신해 온 어린아이는 결혼의 신 히메네스로부터 왕관을 받아 쓰고 있다. 이러한 구상은 애매모호하게 얼버무려진 추상이 아닌 힘 있는 현실로 의미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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