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치와 카라바지오는 불멸의 거정으로 손꼽히지는 않았었지만 점차 그들의 진가가 재평가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들의 그림은 19세기 유행에서 뒤떨어져버렸음에도 그들이 당시의 회화에 끼친 영향과 자극은 상상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유럽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였던 로마에서 활동했다. 그때의 미술가들은 로마로 와서 회화에 대한 논쟁에 참여하고, 연구하고, 최신미술 운동에 대한 정보를 획득해서 자신의 고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들 중 뛰어난 이들은 이국의 미술에서 배운 바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개성적 표현을 발전시켰다.
귀도 레니
로마에서 자신의 양식을 발전시킨 수많은 이탈리아 거장들 중에서 귀도 레니는 단연 손꼽히는 화가였다. 볼로냐 출신인 그는 어느 유파에 몸담을지 고민하고 망설이다가 카라치의 문하에 들어가 운명을 함께했다. 카라치 못지않은 명성을 누리기도 했는데, 그 명성이 한때는 라파엘로의 그것과 비등할 정도였다. 그의 그림 <오로라>를 보자.
1613년 로마의 한 궁전 천정에 그려넣은 프레스코화인 이 그림은 새벽의 여신 오로라와 전차를 타고 있는 태양의 신 아폴론, 횃불을 든 푸토, 시간의 여신들인 호라이들이 즐겁게 춤을 추며 행진을 하고 있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장면을 보여준다. 그는 라파엘로의 그림을 닮고 싶어 했고 그런 면에서 이 그림은 성공적이지만 그 때문에 현대의 비평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시절이 자신이 선호하는 작품의 양식을 모방해야 한다는 원칙들이 일반적이었던 환경임을 생각한다면 비난할만한 점도 아니다. 그런 추세를 인정하고 본다면 레니가 그러한 전제들 속에서 이루어낸 그만의 방침과 노력이 이루어낸 성과는 인정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고전의 조각의 기준에 따라 자연을 이상화하고 미화시키려는 노력을 했던 카라치, 레니와 그의 제자들은 신 고전적, 혹은 아카데믹이라 불리는 장르를 이끌어냈다.
니콜라 푸생
'아카데믹'한 화가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히는 프랑스 화가 니콜라 푸생은 로마를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작품을 제작하며 살았다. 푸생은 순수하고 장엄했던 고대 국가의 상상적인 광경을 묘사하기 위해 고전 조각의 아름다움을 탐구했다. <아르카디아의 목자들(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다)>는 그의 그런 노력의 결과물이다. 햇빛이 가득한 조용한 풍경 속에는 양치기로 보이는 잘생긴 젊은이들과 아름다운 여인 하나가 묘비를 둘러싸고 있고 그 묘비에는 라틴어로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죽음은 목가적인 이상향 아르카디아에서도 군림한다는 뜻이다. 무덤을 둘러싼 인물들의 구도는 전체적으로 아주 단순해 보이지만 인물들이 생각에 잠기어 죽음을 생각하는 모습들은 회고적 시정을 불러 일으키며 평화스럽고 조용한 분위기로 표현되어 있어서 감상자로 하여금 죽음의 공포를 불러일으키지 않고 함께 생각하게 한다.
클로드 로랭
이와 같은 회고적 아름다움으로 유명한 프랑스 출신 화가 클로드 로랭 역시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다. 그는 로마의 캄파냐 풍경, 과거의 위대한 면모를 떠올리게 하는 장엄한 유적들이 있는 로마 근교의 들과 언덕을 완벽하게 묘사했다. 그가 그린 나무 습작들은 보기만 해도 즐겁지만 그가 제대로 완성한 그림과 동판화에서는 과거의 꿈과 같은 풍경을 그려낼 수 있는 소재만을 선택하여 현실과는 다른 금빛 광선이나 은빛 대기 속에 무르녹은 것과 같은 묘사를 선보였는데, <이집트로 피난 도중 휴식을 취하는 예수 일가가 있는 풍경>을 보면 이것이 어떤 느낌인지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자연의 숭고한 아름다움에 대한 깨달음을 일깨워 준 화가가 바로 그였다. 그가 죽고 거의 백년이 지나고서 여행자들은 그가 보여준 풍경들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를 아름답다 찬미하며 소풍을 즐기는 풍조가 생기기도 했다. 부유한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사유 공원이나 저택에 클로드가 보여준 아름다움을 기반으로 둔 인공적인 소자연을 조성하려고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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