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다. 18대 왕조의 한 왕이었던 ‘아메노피스 4세’로 불리는 이단자가 등장한 것이다. 그는 예로부터 전승되는 숭상의 대상들과 관습들에 반기를 들고 타파하고자 했던 사람이었다. 다양하고 수많은 신들이 존재했던 당시에 그는 유일신으로 아톤만을 숭배하고 그 외의 신들을 부정했다. 그는 자신을 아크나톤이라고 명명하고 자신이 머무는 왕국의 자리도 옮기며 다른 신들을 섬기는 사제들과 접촉도 허용하지 않았다.
아톤의 시대에 그가 미술가들에게 요구했던 그림들은 당시 파격이었을 것이다. 초기 이집트 시대의 엄숙하고 경직된 위엄과는 전혀 다르게 가족과 함께 즐겁게 지내는 것, 예를 들어 무릎 위에 어린 딸을 올리거나 아내와 산책하는 모습, 지팡이에 기댄 소탈한 모습 등이 표현되어 있다. 일부 초상은 그를 추남으로 그려져 있기도 했는데, 인간적인 그대로의 모습을 담기 위한 의도라고 짐작할 수 있다.
1923년 투탕카멘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투탕카멘은 아그나톤의 후계자였고 그의 무덤에 남겨진 미술의 양식은 개혁적이었던 아크나톤의 계보를 이었다. 가정적이고 목가적인 왕 부부의 모습이나 의자 위에 방만하게 앉아 늘어진 모습 왕과 같은 크기로 그려진 왕비의 모습이 그것을 증명한다.
18대 왕조 시대의 개혁이라 부를 만한 이러한 변화는 외국의 작품들, 특히 바다 건너 섬인 크레타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크레타의 예술가들은 재빠른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을 선호했다. 자유롭고 우아한 양식의 당시의 유적이 발견되었을 때 기원전 2000년의 작품이라는 사실에 발굴자들은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이집트 미술의 해방은 짧았다. 투탕카멘의 통치가 끝나기도 전에 기존의 종교들이 다시 득세하고 부활하였고, 외부와의 교류도 끝나버렸으며 그 후 또 다른 천년에 걸쳐서도 새로운 테마나 작업이 행해져도 기존의 규칙을 벗어나지 않는 토대 위에서만 이루어졌다.
같은 시기 근동 지역에는 이집트를 논외 하더라도 꽤 여러 나라가 존재했다.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두 강을 끼고 발전했던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는 강력한 나라였다. 우리가 말하는 메소포타미아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그 두 강의 계곡을 의미한다. 그러나 보존이 잘 되어있는 이집트의 유적과 달리 메소포타미아의 흔적들은 비교적 많이 남아있지 않은데,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 풍화되고 부스러지는 벽돌 건축방식 때문이기도 했고, 이집트와 같이 내세의 영원한 삶을 위한 형태를 보존하기 위한 종교나 신앙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수메르 족은 순장의 풍습이 있었다. 그들은 왕이 죽으면 그의 전 가족과 노예들을 함께 매장했는데, 이 시기의 무덤이 발굴되고 당시의 생활이나 사상을 엿볼 수 있었다. 그들의 미술은 고도로 세련된 아름다움을 보이는 동시에 미신과 잔혹성을 가지고 있었고 마치 문장이나 로고처럼 배치된 상상 속의 야수의 모습들이 장식된 경우도 있다. 순장하는 문화였지만 이 국가의 왕들도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수메르 족은 조직적인 도시문화가 이루었고, 조형 활동에 있어서 그들의 미의식을 뚜렷하게 표현하는 능력이 있었다. 석재를 얻을 수 있는 조건이 아니어서 조각이나 건축양식에 있어서 조형 의욕을 충분히 펼칠 수도, 기술을 연마할 기회나 혜택을 얻기도 힘들었지만 아카드 시대의 나람 신의 전승비, 혹은 마니스 투수왕 입상, 구데아 좌상 등 진보한 조소 작품을 만들어냈고, 특히 인체를 사진을 보는 듯 표현하는 변화를 가져왔다. 석재의 공급이 미비한 탓에 조각을 위한 환경 또한 미흡했던 것에 반해 공예의 발전은 놀라웠는데 우르 왕묘에서 출토된 유품을 보면 그 당시 얼마나 공예 감각과 기술이 월등했는지를 알 수 있다. 금 공예품, 패각 공예품을 중심으로 단금·조금 주금·금립 금선 세공 등 모든 고급 기술을 구사해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공예 감각은 메소포타미아 미술 전반에 걸쳐 영향을 주었고 건축 세부·조소·회화의 곳곳에 스며들어 독특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바빌로니아 왕조의 미술도 잠깐 살펴보자. 바빌론은 아시리아 제국의 센나케리브 왕에 의하여 파괴되었기 때문에 당시의 미술 작품이 유실되었지만 남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우르·가 파제의 유적과 또 도시국가인 마리의 유품에서 그 시대의 미술을 유추해야 한다. 조소 분야에서는 머리카락, 장신구, 의상, 조형을 섬세하게 표현한 닌갈 여신상과 이슈타르 신, 외눈박이인 괴물을 죽이는 신상 등 부조 작품에서 독특함을 찾아볼 수 있다. 회화 분야에서는 마리 왕국의 프레스코 벽화가 대표적인데 짐리 림 왕이 지모신 이슈타르로부터 왕권을 수수하는 장면이 표현되어 있다.
미술가들은 승리와 전리품을 상징하는 기념물들을 창작해야 했다. 예를 들자면 죽은 적을 짓밟은 왕과 패배한 적들이 목숨을 구걸하는 장면이 담긴 부조 같은 것들인데, 이러한 기념비들은 점차 그림 연대기로 발전했는데, 이러한 예는 아시리아의 유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원전 9 세기 아시리아의 아수르나지르팔 3세 시대의 연대기에는 조직력 좋은 전역의 많은 이야기들을 읽어낼 수 있는데, 마치 그 당시의 영상 보도자료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만큼 생생하고 실감 나게 표현되어 있다. 아시리아는 서아시아에서 강대한 군사력과 정복당한 민족에 대한 참혹하고도 무참한 정치를 감행했고 광활한 영토에 군림하여 세계제국의 양상을 가졌으며 기원전 9세기의 전반부터 기원전 6세기 후반까지 350년간에 걸쳐 활동한 민족이다. 그 작품들 속을 살펴보면 아시리아 사람들의 기질을 알아낼 수 있다. 그들의 그림에 죽은 시체나 쓰러진 자 중에 아시리아인은 없고 모두 적의 모습이다. 그들은 전쟁에서 승리한 왕들의 기념비에 자신들의 용맹함을 한껏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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