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는 피렌체에 버금가는 이탈리아 미술의 중요한 중심지로 무역을 통해 동방과 밀접한 관계 맺고 있었다. 건축에 고전적 형식을 적용하는 르네상스 양식을 받아들이는데 다른 이탈리아의 도시들에 비하여 더딘 편이었지만 일단 유입이 되자 새로운 경쾌함과 화려함 따뜻함을 갖추어 거듭나게 되었다. 그림 <산 마르코 대성당의 도서관>은 이 양식의 가장 특징적 건물 중 하나다. 건축가 야코포 산소비노는 도시 특유의 분위기, 즉 물 위에 반사되어 빛나는 화려한 베네치아를 완전히 자신의 작품에 반영시켰다. 이 시대의 건축가들은 단순한 요소들을 결합시켜 전혀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냈다. 아래층은 강건한 도리아식 원주를 사용하는 정통적인 고전적 방식을, 이층은 이오니아식으로 난간과 조상들을 줄 세우고 아틱을 그 위에 덧붙였다. 그러나 산소비노는 열주들 사이의 아치들을 콜로세움과 달리 큰 기둥에 연결시키지 않고 작은 이오니아식 기둥으로 지지하여 호화롭고 풍부한 느낌이 나도록 하고, 난간과 꽃무늬 장식, 조각, 격자무늬 장식 등을 이용해 외관에 고딕시대의 복잡하고 화려한 장식을 했다.
이 건물은 친케첸토 베네치아 미술 특유의 도시 취향을 보여 주는데, 사물의 윤곽을 애매모호하게 만들고 빛과 색이 서로 뒤섞이게 하는 물의 도시의 공기가 느껴진다. 이러한 특징은 이 도시의 화가들에게 색채를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쳤을지도 모른다. 중세시대의 화가들은 사물의 진짜 형태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것만큼 사물의 실제 색채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다. 세밀화와 칠보세공 등에 그들이 구할 수 있는 가장 값비싸고 순수한 색채를 칠하고 싶어 했다. 빛나는 금색과 순수한 감청색 등의 귀한 안료를 나란히 배합시키는 것을 선호했다. 베네치아의 화가들은 색채를 그림이 다 그려진 후에 덧붙이는 추가적 장식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베네치아의 화가 지오반니 벨리니가 산 자카리아의 제단에 그린 그림을 보면 색채에 대한 그의 판이한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그 그림은 무엇을 그렸는지 파악하기 이전에 이미 원숙하고 풍요한 색채로 시선을 끌고 감명을 준다. 그림 속에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왕좌와 벽과 천장에 가득한 금빛 찬란한 따뜻함, 바이올린을 켜는 천사, 열쇠와 책을 들고 있는 성 베드로, 종려나무 잎과 부러진 형틀을 들고 있는 성 카타리나, 성 아폴로니아와 성 히에로무스가 그려져 있다. 성인들과 함께 그려진 성모상은 여러 차례 그려졌던 소재이지만 지오반니 벨리니의 작품처럼 차분하고 품위 있는 작품은 드물다. 질서를 깨뜨리지 않은 단순한 대칭적 구도에서도 생명감을 불어넣었고 마리아와 성인들의 전통적인 모습도 기품과 특징을 유지하며 살아있는 듯 그려냈다.
지오반니 벨리니는 베로키오, 길를란다요, 페루지노 등과 같은 세대이며 칭케첸토의 거장이었으며 지오르지오네, 티치아노 등을 배출시킨 제작소의 수장이었다. 베네치아의 화가들은 풍부한 색채의 조화를 통해 화면에 통일성을 부여한 지오반니 벨리니를 추종했다. 화가 지오르지오네는 바로 이러한 영역에서 가장 혁명적 업적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고 그의 작품이라고 확실시되는 작품도 다섯 점을 넘지 않지만 모두 놀라운 수작들이다. 그의 가장 완벽한 작품으로 평가되는 <The Tempest>는 어떤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높게 평가되는 것은 인물들이 세심하게 그려진 것도 아니고 별다른 기교를 부린 구도를 사용한 것도 아님에도 화면 전체에 충만한 빛과 공기를 어우러지게 자아낸다. 언뜻 보면 단순한 배경처럼 보이는 경치는 그 자체로서 그림의 진정한 주제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감상자는 이 그림을 보면 인물과 배경을 번갈아 바라보기를 되풀이하게 된다. 그림을 이루고 있는 모든 요소가 따로따로 얹혀있는 것이 아니라 화면 속 모든 자연적 요소와 인물들을 하나로 여겼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회화는 소묘에 채색을 더한 것 이상의 은밀한 법칙과 방법을 가진 예술이 되었다.
지오르지오네는 요절하여 이러한 발견의 결실을 확인하지 못했다. 그 성과는 티치아노의 작품에서 개화했다. 티치아노는 남부 알프스 카도레에서 태어나 99세까지 살다가 흑사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미켈란젤로에 비견될 명성을 얻으며 작업을 이어갔다. 그가 떨어뜨린 붓을 황제가 주워줄 정도로 경의를 표했던 일화가 있을 만큼 천재로 인정받았다. 티치아노는 다빈치처럼 만능의 학자도, 미켈란젤로처럼 뛰어난 인물도 라파엘로처럼 다재다능하고 매력적인 인물도 아닌 그저 '화가'였다. 그의 색채를 다루는 능력은 미켈란젤로의 소묘에 필적했고 이 뛰어난 기술은 구도의 법칙을 무시하고도 통일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경지였다.
성모마리아는 그림의 중앙에 위치하고 않았고 두 성인의 모습은 양쪽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자로 그려져 있는데, 이런 장면은 이전에 없었던 구성이었다. 성 프란체스코의 상징은 스티그마타로, 성 베드로는 늘어뜨린 열쇠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표현했다. 이 그림은 베네치아의 귀족 야코포 페사로의 승전감사의 기념으로 성당에 바쳐진 것인데, 티치아노는 포로를 끌고 있는 기수와 마리아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페사로의 모습을 그려 넣고, 성 프란체스코는 아기 예수가 페사로 가족을 바라보도록 주의를 끄는 장면으로 표현했다. 대칭 구조에서 벗어난 이 그림은 한쪽으로 치우치고 균형을 잃을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 예기치 않은 구성은 전체의 조화를 깨뜨리지 않도록 빛과 색채로 정경을 통일시켰다.
티치아노가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젊은 영국인>이라는 초상화 때문이다. 이 초상화에는 다빈치의 <모나리자>에서 볼 수 있는 세밀한 입체감이나 계산이 보이지 않음에도 살아 있는 것 같다. 꿈꾸는 듯한 눈동자는 거친 캔버스 위에 한 점의 물감을 발라 놓은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베네치아와 같은 중심지 뿐 아니라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마을인 파르마에서도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예술은 발전하고 있었다. 안토니오 알레그리 코레지오가 좋은 예이다. 그는 명암법에 있어서 새로운 효과를 이룩해 냈다.
코레지오의 <성야>는 예수의 탄생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 중에 하나로 갓 태어난 아기 예수는 온 사방에 빛을 비추고 성모의 아름다운 얼굴 또한 행복으로 빛난다. 천사는 노래하고 목동이 굽어보며 소녀들이 이를 지켜보며 성 요셉은 당나귀를 타고 온다.
이 배치는 기교가 없는 일반적인 것이지만 마리아와 예수에게 빛을 집중시켜 전체 그림은 균형을 갖춘다. 색채와 빛이 형태에 균형을 줄 수 있고 의도대로 시선을 이끌어 내는 것은 티치아노보다 더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코레지오 이후의 많은 화가들은 수세기에 걸쳐 그의 작품을 모방했는데, 교회당의 천정과 원개에 그림을 그리는 방법에서 그러했다. 빛의 효과를 잘 살리는 그의 기교는 어두운 중세 성당 안에서 궁륭형 천정을 올려다보았을 때 얼마나 인상적인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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